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의 전쟁범죄 (문단 편집) == [[독일의 전쟁범죄|나치의 전쟁 범죄]]와의 비교 == 일본군의 만행은 [[나치 독일]] 같은 근대적인 문명 국가의 조직이 관료적으로 했다기보다 오히려 관료제의 부실한 부분들이 봉건적인 조직문화와 시너지를 일으킨 것에 더 가까우므로 정치, 사회학 관련 연구자들에게 집중할 대목이 적다는 의견이 있다.[* 죙케 나이첼, 하랄트 벨처, 나치의 병사들 (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,Soldaten), 2015 참고.] 일단 양 국가의 정부 체계가 달랐다. [[나치 독일]]은 [[아돌프 히틀러|최고 지도자]]를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인 체계였던 반면, [[일본 제국]]은 [[쇼와 덴노|최고 지도자]]가 상징적인 정점이었지만 실질적인 권한이 없었다. 그리고 [[아돌프 히틀러|히틀러]]와 달리 [[쇼와 덴노|히로히토]]는 전쟁에 딱히 의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밑의 군부들이 천황을 압박해서 전쟁결의를 받아냈다. 히틀러는 다른거 없이 오직 자신의 망상과 욕망에 의해 전쟁을 일으켰고 각종 전쟁범죄들을 저질렀으며, 그 모든 과정도 자신이 직접 주관, 주도, 지휘하였다. 반면 히로히토는 전쟁결의조차 군부들의 주도로 이뤄진 마당에 전쟁범죄에 관여할 틈세 자체가 없었다.[* 가장 적절한 예를들면 생체실험이 있다. 나치는 히틀러의 주도아래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지에서 유대인, 슬라브족, 폴란드인, 그리고 독일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150만 명 이상을 실험했고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다. 일제는 이시이 시로라는 사령관 한 명이 '전염병을 예방하고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은 731부대'의 부대장으로 취임한 후 생물학무기를 개발하고싶다는 개인적 야망으로 부대를 생체실험장으로 바꿔 극비로 운영했다. 4,000명 이상을 실험했고 나치보다 폐쇄적이고 비밀리에 운영된 배경에 의해 생존자는 단 1명도 없었다. 따라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천황은 물론 거의 아무도 몰랐다.][* 다만 20세기 후반 이후 쇼와 덴노가 전쟁범죄 행위를 일부 승인하거나 묵인한 사실이 알려져 히로히토에 대한 평가 또한 달라지는 계기를 맞이했다. 물론 히틀러처럼 전쟁범죄를 직접적으로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수뇌부의 정점으로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전쟁범죄를 막지 않고 때로는 종용한 부분은 크게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. 다만 이미 그가 죽은 뒤에 밝혀진 내용이라 외교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다.]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주 목적도 다른데 나치는 [[우생학]]에 기반한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앞세워 [[홀로코스트|유대인과 집시, 슬라브를 지구상에서 아예 절멸하는 것]]이 목적이었던 반면 일제는 [[대동아공영권|‘아시아 인종의 해방‘이라는 기만적인 구호]] 아래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문화적 경제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.[* 특히 독일은 타국 뿐만 아니라 [[T4 작전]]처럼 심지어 자국에서 열등하다고 여긴 "장애인, 노인, 환자" 등에게도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데, 때문에 독일은 종전 후 [[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]]에서 일본의 도쿄 전범재판과는 달리, 반인륜적 범죄 (Crimes against humanity)에 대해 추가유죄를 인정받는다.] 물론 그 과정에서 [[학살]]을 비롯해 [[반인륜]]적인 [[전쟁범죄]]들이 있었지만 나치같은 '학살'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전쟁 수행의 과정에서 다소 우발적이고 무분별하게 저지른 경우가 많았다.[* 그나마 [[731 부대]], [[일본군 위안부]] 등이 일제가 정부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저지른 전쟁범죄이지만 이 역시도 홀로코스트나 슬라브 멸절에 비해서는 규모가 훨씬 작았고 특정 인종의 멸절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.] 즉, 계산적이고 조직적으로 저질렀느냐, 우발작이고 무분별하게 저질렀느냐의 차이가 있다.[* [[나치 독일]]은 철저했다는 것이 [[홀로코스트]]뿐만 아니라 [[독소전쟁]]과 당시 전쟁범죄에도 해당되는데 독소전쟁 당시 히틀러가 우생학을 근거로 대놓고 제네바 협정을 무시하도록 명령하자 국방군과 아인자츠그루펜, 슈츠슈타펠 같은 학살전문부대까지 운영해서 철저하게 학살했다. 또한 유럽전역에 수십개의 전문적인 살인공장을 건설하고(이 중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[[아우슈비츠]]는 무려 축구장 수십개 면적이었다.) 소, 돼지 같은 육가공업체에서 효과적인 도축방법을 연구하듯이 효과적인 대량살인 방법까지 연구하였고, [[동유럽]]에선 전체 인구에서 죽여야 할 인구 비율까지 세세하게 계획하였다. 따라서 나치 독일이 학살이 계획적 살인이라면 일본 제국의 학살은 우발적 살인의 면모를 띄었다.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나치가 희생시킨 인구가 일제보다 약 1,000만 명 가량 많았다.] 이러한 차이는 일본의 극우들이 자국의 만행이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. 하지만 이러한 체계성 여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 역시 나치 독일에 조금 못 미치는, 거의 대등한 정도의 인명피해를 야기했다는 사실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. 2차 대전기 나치 독일에 의한 피해자 수 총합은 최대 4,000만 명에 달하며,[* 소련: 2,600만, 폴란드: 600만, 남유럽: 300만, 서유럽/북유럽: 200만, 기타 동유럽: 200만, 유대인/장애인/동성애자 등 독일계 홀로코스트 피해자: 100만.] 일본 제국의 피해자 수 총합 역시 최대 3,000만 명에 이른다.[* 중화민국: 2,200만, 네덜란드령 동인도: 400만, 프랑스령 인도차이나: 220만, 미국령 필리핀: 100만, 기타 동남아: 100만, 일본령 조선: 50만.][* 다만 이 수치는 기근, 전염병 등 간접적인 피해자를 합한 수치이며 직접적인 피해자에 한정하면 나치즘의 피해자가 훨씬 더 많다는 데에 있어서는 학계 대다수가 동의하는 편이다. 일례로 [[https://en.m.wikipedia.org/wiki/Rudolph_Rummel|루돌프 럼멜]] 교수의 통계에 따르면 독일은 2,094.6만 명, 일본은 596.4만 명을 학살하여 독일의 학살 규모가 4배 정도 더 크다.[[https://www.hawaii.edu/powerkills/20TH.HTM|#]] 실제 일제의 경우 전염병, 기근 등 완전한 간접적 피해자나 곡물 수탈, 강제징용, 포로 학대 등 직접적 피해자라 할지라도 다소 우발적이고 비계획적인,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성격의 피해자가 많았다. 반면, 나치즘의 경우 [[홀로코스트]] 및 동유럽 내 슬라브 학살 계획 등, 보다 직접적이고 계획적인 범죄에 희생된 피해자의 비중이 더욱 높았다.] 이는 일본 제국이 나치 독일과 같이 조직적인 학살을 자행하지 않았음에도 전쟁범죄의 성격 자체가 유사한 파시스트 이탈리아보다 나치 독일과 비교되는 주요 원인이다.[* 독일과 일본이 각각 4,000만 명과 3,000만 명의 인명피해를 야기할 때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 침공, 북아프리카 전선, 발칸 침공을 포함해 최대 100만 이하의 사망자만을 야기했다. 오히려 소련 등 연합국이나 헝가리, 크로아티아 등 마이너 추축국이 자행한 전쟁범죄가 더욱 심각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